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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서핑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케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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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플라이루트 2024.03.14 10:31:46 조회수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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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 해안가를 따라 성장한 서핑 문화에 진심인 브랜드, 케이튼

캘리포니아 보드숏의 창시자라는 자부심과 서핑 문화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케이튼은 품질, 내구성, 디자인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을 펼치고 있으며, 케이튼의 헤리티지를 알게 된다면 케이튼만의 감성을 더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케이튼의 시작은 1954년 여름, 케이튼 부부가 캘리포니아 해변가에서 작은 서핑샵을 운영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나일론과 니켈 고리를 사용하여 견고한 보드 커버를 제작했으며 높은 내구도로 인해 ‘방탄’이라는 별명 또한 갖게 되었습니다.



1957년, 한 소년이 그들에게 청바지를 입고 서핑을 하며 겪는 고충을 얘기하며 바지를 만들어 달라 부탁했습니다. 이는 케이튼의 상징적인 아이템인 보드숏이 탄생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소년은 미국 서핑 문화의 시작을 알린 '코키 캐롤'로 전 세계 서핑 대회에서 100번 이상 우승한 전설적인 프로 서퍼가 되었습니다. 케이튼 부부가 만든 커스텀 보드숏은 캘리포니아 최초의 보드숏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그들의 보드샵은 보드숏을 원하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60년대에는 게리 로페즈, 도널드 다카야마, 게리 프로퍼, 미젯 파렐리, 레도 아벨리라, 마이크 퍼머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퍼들이 케이튼의 보드숏을 착용하며 더욱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1967년 윌터 케이튼이 세상을 떠난 후, 낸시 케이튼은 1977년부터 헌팅턴 해변에서 수년간 서핑대회를 주최했으며 이 대회에서 톰 커렌, 마틴 포터, 서니 가르시아, 숀 톰슨 등 유명한 서퍼들이 탄생했으며, 케이튼은 서핑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1980년대 초에 이르러서, 서핑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였고, 이에 많은 제조업자들은 이 흐름에 편승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낸시 케이튼은 자신이 사랑하는 서핑 문화가 단순히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하며  매각 제안을 여러 번 거절했습니다.


낸시는 1966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케이튼의 재봉사인 사토 휴즈에게 케이튼을 맡겼고, 그와 그의 아들 글렌은 케이튼의 품질과 내구성, 디자인을 이어받아 계속하여 보드숏을 제작해 왔습니다. 이를 통해 케이튼은 서핑에 대한 케이튼 부부의 사랑과 헌신을 이어나가며 오랫동안 서핑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서핑문화의 시작과 함께한 케이튼을 지금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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